2024년 3월 29일(금)

기부 좀 해본 MZ세대에게 물었다 “기부의 미래는?”

더나은미래×굿네이버스 공동기획
[2021 기부의 재발견]
④MZ가 말하는 기부의 미래 <끝>

올 초 래퍼 이영지(19)는 인스타그램을 통해 휴대전화 케이스를 팔고 수익금 2억4000만원을 기부했다.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사회적 거리 두기 메시지를 담아 직접 제작한 케이스였다.

‘기왕 팔 거면 기부하자. 수익금 전액 기부 간다. 살 사람들만 사셈.’ 판매를 알리는 짧은 공지 글이 올라오자 10대와 20대가 몰려들었다. 판매 시작 15분 만에 주문이 1000건을 돌파했고, 총 1만3000건 이상의 판매를 기록했다. 이영지는 판매 종료를 알리면서 “나 1원도 안 가져가지만 행복하다”고 말했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발표한 ‘2021 기부 트렌드’에 따르면, 지난해 20대의 기부액 증가율은 전년 대비 23.8% 상승해 전 세대 가운데 가장 큰 증가세를 보였다. 직관적이고 재미를 추구하며 가치 소비를 지향하는 MZ세대(1980년대 초반부터 1990년대 중반에 태어난 ‘밀레니얼 세대’와 19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중반에 태어난 ‘Z세대’를 합친 말). 이들이 생각하는 기부는 어떤 모습일까. 지난 26~27일 조선일보 더나은미래와 굿네이버스는 기부 경험을 가진 대학생 5명을 대상으로 ‘MZ가 생각하는 기부의 미래’를 묻는 FGI(Focus Group Interview)를 가졌다. 코로나 확산 방지를 위해 그룹 채팅과 전화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기부는 소비다

―MZ세대는 기부를 소비처럼 생각하는 것 같다. 소비를 통해 신념이나 가치관을 표출하는 ‘미닝아웃(Meaning out)’의 범주에 기부도 포함되는 셈이다. 대가성이 없어야 하는 기부를 소비처럼 여기는 이유는 무엇일까?

남형곤=기부한 금액의 가치만큼 무언가 돌아와야 한다는 건 아니다. 만족감이 중요하기 때문에 굿즈를 제공하는 기부 캠페인이 상대적으로 인기가 있는 건 사실이다 작은 굿즈 하나라도 남으면 좋은 일 했다는 생각이 계속 떠오르니까.

신호철=기부와 소비의 경계를 딱 구분할 순 없기 때문 아닐까? 기부도 소비처럼 돈을 지출하는 거니까 소비 성향이 기부에도 겹쳐지는 것 같다. ‘돈쭐(돈으로 혼내준다는 의미로 좋은 평가를 받는 매장의 물건을 적극적으로 구매하는 행위)’을 기부라고 할 순 없지만 같은 맥락이라고 생각한다.

박희윤=Z세대인 이영지씨가 말한 ‘기왕이면 좋은 일 한다’에 적극 동의한다. 어차피 쓸 돈이라면 좋은 일에 쓰는 게 훨씬 더 낫다고 생각한다.

―정기 후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남형곤=나도 그렇고 주변 친구들도 그렇고 정기 후원보다 일시 후원이 더 끌린다. 매달 1만원, 3만원이 계속 빠져나가는데 체감이 잘 안 된다고 할까?

조계원=정기 후원을 하려고 마음먹은 경우에는 ‘기부’라는 새로운 지출을 만들기보단 기존에 하던 지출을 줄여서 기부로 돌리는 것 같다.

‘통 큰 기부’보다 십시일반

―개인의 고액 기부 소식을 접하면 어떤 기분이 드는지?

정나영=우선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살림이 넉넉하지 않은 분들이 기부했단 소식을 들으면 더 그렇다.

남형곤=사실 고액 기부 사례를 보고 ‘나도 기부해야겠다’는 생각까진 안 드는 것 같다. 연예인이나 기업인들의 기부도 마찬가지다. 뭐랄까, 억대 기부를 보면 조금 현실감이 떨어진다는 느낌이 든다고 해야 할까? 나는 기부할 수 없을 것 같은 큰돈이라 그런 거 같다.

신호철=저도 노인분께서 억대 기부를 결정하셨다는 이야기에 놀라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과연 나였어도 그렇게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더 크다.

―오히려 작은 기부에 마음이 움직인다는 뜻인가?

정나영=20대가 기부에 소극적으로 비칠 수 있지만 자원봉사나 캠페인 참여와 같은 나눔 활동까지 포함하면 꽤 많을 거다. 한 명이 감당할 수 있는 몫이 크지 않으니까 여럿이 모여서 큰일을 해내려는 심리가 작동한 것 아닐까?

조계원=팬덤이 각자 소액을 모아 자신들이 좋아하는 셀럽 이름으로 기부하는 게 대표적이다. 아까도 이야기 나왔지만 ‘기왕 덕질할 거면 좋은 일로 해보자’ 이런 거다.

남형곤=’저런 거면 나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 기부나 나눔 활동을 보면 마음이 확 끌린다. 일반인의 재능기부나 직장인들의 봉사활동이 대표적이다. 현금성 기부의 경우에는 내가 낸 돈이 잘못 쓰이면 어떡하나 하는 불안감도 뒤따르는 것 같다.

조계원=지난해 학교 동문과 교직원을 대상으로 코로나19 모금을 진행해 1182만원을 기부한 경험이 있다. 단순 금전적 가치만 강조하면 안 될 것 같아서 수혜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응원 메시지와 편지도 함께 보내달라고 했다. 돈만 기부하도록 했으면 그만큼 모으지 못했을 거다. 기부자 대부분이 20대 초중반이었는데 결과보다는 과정을 중요시하는 MZ세대의 특징과 잘 맞아떨어졌던 것 같다.

신뢰성 원하지만 복잡한 건 싫어

―기부할 단체를 고를 땐 어떤 점을 고려하는지?

박희윤=단체의 이름보단 그 단체가 어떤 일을 하는지가 더 중요하다. 또 기부 방식도 중요하다. 무겁고 어렵고 복잡한 건 싫다. 간편할수록 좋다. 기부 방식이 복잡하면 아무래도 기부를 결심하기 더 어렵다. 생각났을 때 바로 실행할 수 있어야 한다. 애플리케이션을 구동해 몇 번의 터치로 할 수 있는 기부를 많이 하는 편이다.

정나영=온라인 크라우드펀딩이 간편해서 요즘 많이들 참여하는 것 같다. 특히 애플리케이션으로 기부하는 경우에는 휴대전화에 새로 설치해야 한다는 점에서 조금 번거롭지만, 한 번 사용하고 나면 모금 캠페인에 쉽게 노출되는 장점이 있다.

―모금 캠페인이 신뢰성을 확보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남형곤=기부자들이 모금 기획에 직접 참여해 보는 기회를 주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조작이 불가능한 블록체인 기술을 이용하는 것도 신뢰를 얻는 좋은 방법이다. 블록체인을 잘 이해하진 못하지만 기술을 믿기 때문에 맡길 수 있을 것 같다.

신호철=블록체인 기부는 차후 기부금 집행 내역을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과연 제대로 사용될까?’ 하는 의구심을 없앨 수 있다. 모금 단체가 새로운 기술을 적극 도입하면 기부에 대한 부정적 인식도 점차 사라지지 않을까.

조계원=바로 기술을 도입하는 게 어렵다면 단체들이 기부자들에게 정보를 좀 더 적극적으로 공개해야 한다. 내가 낸 돈으로 누가 도움을 받았는지, 어떤 식으로 썼는지 궁금할 때가 있다. 확인하는 방법이 복잡하면 괜히 의심스러울 것 같다. 기부에 대한 여러 정보를 쉽고 간단하게 검색해볼 방법을 마련해주면 좋겠다.

문일요 더나은미래 기자 ilyo@chosun.com

<글 싣는 순서>
①모금이 탄생하는 시간
②’빈곤 포르노’를 휴지통에 버리시겠습니까?
③기부에 관한 오해와 진실
④MZ가 말하는 기부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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